구조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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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교회의 새로운 표현(Fresh Expressions of church)를 실천하고 점검하고 발전시키는 전 과정에서 기준이 되는 지침을 담고 있다.

기도와 쉼없는 경청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이 관계가 교회가 되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담보하는 반복을 통해 동일성과 차이성을 확장시켜나간다.

그 모든 원형으로 예수의 행적이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제자로 삼으셨다(마태 28:19). 마찬가지로 새로운 표현의 여정은 제자를 만드는 구조를 제공한다.

앞선 세 개의 원에 해당하는 내용(경청, 사랑과 봉사, 공동체 건설)은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 동시에 개개인이 예수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동체 건설은 제자로 훈련된 이들이 함께 할 때 가능하다.

제자도를 발견하기 위한 디딤돌을 놓아라.…. 목적을 위해 모임을 시작하라.

아마도 영성 그룹이 될 것이다. 그 그룹에서 사람들은 위대한 영적 스승으로 널리 인정 받고 있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놓고 토론하고 그 말씀에 동의할 수 있는지를 살핀다.

기도는 예수에 관한 대화를 촉발시킬 수 있다. 언어 카페에서 해외 이주 여성들은 차를 마시기 위해 만났고, 영어를 익히기 위해 주제토론을 했다.

이주여성들은 칠판에 기도제목을 적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곧 그들은 기도제목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리스도교를 알고 싶어하는 질문자 그룹이 만들어졌다.

코어 팀으로 일원으로 관심을 보이는 이를 초대하라.

영국 성공회의 사례를 살펴보자.

글러스터에 사는 대여섯명 쯤 되는 신자들은 매주일 60명의 이웃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했고, 축구팀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할 때만 자신들의 믿음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관심을 보이는 이를 그룹에 초대했고, 정기적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계획을 세우고 성경말씀을 나누었다.

방문을 원하면 언제든 한 두번 참여할 수 있었다. 3년 만에 그 팀은 18명으로 늘어나 두 그룹을 이루어야 할 만큼 커졌다. 개인적인 전도는 쉽다. 개인이 공동체를 이루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양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 갈 수도 있다. “왜 하느님이 그런 재앙을 허락하셨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해 신앙인으로서 이렇게 답할 수 있다.

“그것은 제가 겪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끔 팀에서 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음 번 모임에 참석 하시겠어요?

우리는 함께 먹고, 같이 해야할 일의 계획도 세우고, 예수에 관한 이야기도 나눕니다. 그리고 편안하게 기도도 합니다 강요하는게 아니구요. 당신이 원하신다면 함께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어쩌면 진부한 답변일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관심의 표현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또 다른 예가 있다. 모두가 참여하는 Eleven Alive는 아침에 다양하면서도 고정된 틀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예배를 드린다. 2개월 마다 공동체는 4 팀으로 나누어서 점시식사를 한다.

4팀은 2달 동안 돌아가면서 두 번 예배를 준비한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무신론자부터 그리스도인에 이르기까지-이 팀의 구성원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제자를 만드는 데 대단히 유익했다. 각 구성원들의 특징과 성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선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라.

사람들이 질문자 그룹과 같은 디딤돌에 참여할 때, 복음을 두고 대화를 나누면서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다.

. 그 이야기가 오늘 일어났다면 어떤 모습일까?

.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 어떻게 그것이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가?

무엇보다 좋은 친구가 되어라!

사람들이 원치 않거나 그들이 원하는 것 보다 너무 빨리 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하지 말라. 인내심을 가지고 성령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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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은 영국 Fresh Expressions of church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내용이며 매우 일반적이다. 더욱이 양육이 얼마나 양육을 시켜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답은 가까이에 있다. 양육의 의도를 가지고 양육을 시작하는 그 순간 하느님께서는 이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다만 지속적인 양육의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양육 역시 경청, 사랑과 섬김, 공동체 건설, 제자도의 실천, 교회의 모습 갖추기, 앞선 과정의 반복이라는 기본적인 흐름 안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경청하라. 무조건 사랑하라. 희생하며 섬겨라. 그러면 함께 하는 이들과 그들을 통한 리더십이 발현될 것이다. 그리고 내부의 완결구조에 머물지 않고 함께 하지 않는 이들에게 다가가서 경청, 사랑, 희생, 섬김을 하라. 그러면 공동체는 더 커질 것이다. 양육은 경청하는 훈련, 사랑하는 훈련, 희생하는 훈련, 섬기는 훈련이다. 예수께서 하신 바를 우리가 서 있는 처지에 맞게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교는 관념과 이론이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실천이다.

브렌든선교연구소 상임연구원 구균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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