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부터 6월 2일까지 ‘동아시아 화해를 위한 그리스도인 5차 연례 포럼’이 일본 교토의 도사샤 대학과 피정센터에서 열렸다. 이 포럼의 기조 강연을 한 사람은 미국 듀크 대학의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즈Stanley Howerwas였다. 5월 29일(화) 오후 1시 30분에 시작한 이 강의에는 한국, 일본, 중국, 미국, 홍콩, 대만 등에서 온 포럼 참가자들뿐 아니라, 많은 일본인 신자들이 참석하였다.

스텐리 강연의 요지

강연 제목은 ‘부상하는 민족주의와 그리스도인들의 책임 – 아시아의 교회: 바르트주의자의 묵상’이었다. 강연의 내용은 ‘민족주의와 기독교’, 바르트가 말한 ‘정직한 무지’ 소개, 그리고 대안으로서 ‘제도화와 일상’이라는 세 주제로 나누어져 있었다.

1. 민족주의와 기독교

하아어즈는 서두에서 서구 기독교왕국Western Christendom을 언급하는데, 다양한 사람들과 관습들을 하나의 틀로 아우르려는 기독교왕국 전략이란 ‘정부나 법의 권위 아래 교회를 강제로 하나되게 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시아에 왔던 선교들은 기독교왕국의 교회 출신들이었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기독교와 민족주의적 뿌리가 분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시아 교회도 그들에게서 기독교왕국들의 잘못을 배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옥스퍼드 사전을 보면 민족주의nationalism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의 의미가 소개되어 있다. 첫째는 ‘외부 세력의 영향과 건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주권을 행사하려은 바램’이라는 뜻과, 둘째는 ‘자신의 나라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탁월하다고 여기는 감정’이라는 뜻이 있는데, 하우어즈의 용법은 둘째의 것에 해당한다. ‘진정한 (백인) 기독교의 미국을 재건하자’는 구호와 같은 배타적인 국가주의를 염두에 둔 용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우어즈는 문화적 제국주의와 복음 증거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많은 선교사들이, 특히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신학적 확신 때문에, 주도권에 집착한다”는 대너 로버트Dana Robert의 진술을 인용한다. 예를 들어, 글을 가르치고 깨끗한 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우물을 파는 행위조차도 토착문화에 대한 공격일 수 있다는 견해를 소개한다. 하우어즈는 “미국 개신교의 교단주의가 미국이 참여한 전쟁을 열광적으로 지원해 왔다”는 피터 라이트Peter Leithart의 연구를 소개하는데, “이런 교회들은 공통적으로 ‘십자가에 기초한 공교회적 헌신’catholic commitment이 아니라 ‘좋은 게 좋은거다’라는 미국의 통념에 기초한 연합에 헌신하였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종교를 법률로 제정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국가주의적 정책을 위한 통제가 전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성 또는 배타성은 라이트에 의하면 미국 이민자들의 지위에서도 나타난다. 이민자 자녀들이 빨리 미국인이 되기 외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하지만, 결국 그들은 좋은 미국인이라는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우어즈는 이러한 현상을 아시아의 교회들에 적용하도록 참가자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이러한 민족주의 현상이 미국에만 국한 되는 것이고, 아시아의 교회와는 상관이 없는 것일까?” 그는 아시아 기독교인들이 직면한 핵심적인 도전 중 하나로, ‘이 지역 나라들에서 발견되는 민족주의이 발흥을 어떻게 다루는가’라는 문제를 꼽는다. 과거의 상처들을 극복하고 친구들을 얻으려는 노력, 성령 안에서 연합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를 위하여 하우어즈는 칼 바르트Kahl Barth의 정직한 무지Honest Ignorance를 인용한다.

2. 정직한 무지

바르트는 동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한 편지에서  ‘정직한 무지’를 언급하였다. 당시 그는 ‘맑스주의 땅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섬길 것인가’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어떤 조언을 하려면 동독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살아봤어야 하며, 상황과 사람들에 대한 지식의 부족으로 이상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기에, 동유럽 밖의 그리스도인들은 동독의 공산당과 같은 이슈에 대해서는 정직한 무지를 행하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하우어즈는 이 ‘정직한 무지’를 기독교왕국을 극복하기 위한 개념으로 해석한다. 그것은 겸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교회의 정치를 형성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밖에 없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정권도 편애할 수 없으며, 자신들이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우어즈는 이 정직한 무지를, 부르스 케이Bruce Kaye가 말한 ‘공교회성’catholicity과 연결시킨다. 공교회성이란 “기독교 신앙에 지역적인 경험을 뛰어 넘는 더 넓은 차원이 있다”는 관점으로서, 케이에 의하면, 공교회성은 인내, 상호 존중, 겸손과 같은 기독교적 덕목으로 표현된다. 하우어즈는 이 공교회성이 교회 간의 상호교류의 실천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하면서, 특히 미국처럼 인내심 없는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은 인내심과 겸손과 같은 덕목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가, 일본, 중국, 한국, 홍콩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우어즈에게 있어서 정직한 무지, 공교회성, 겸손, 수용, 상호교류 등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소위 기독교적인 정치 강령 또는 정책을 가지고 국가를 통해 전 사회에 무언가를 관철시키려는 것에 대하여 조심스럽다. 그것이 자칫 정책의 절대화 또는 우상화를 가져올 수 있기에, 그는 덕목 등을 통한 간접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것을 제도화와 일상화를 통하여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3. 제도화와 일상

하우어즈의 강연에서 특별히 두드러졌던 내용 중 하나는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이다. 그는 “오늘 기독교가 존재하기 위해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하였다. 아시아의 교회가 세월을 견뎌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반드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케이에 의하면 제도란 “세월을 지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인간 행동의 기초적인 가치 위에서 사람과 사물의 관계 패턴에 연속성을 유지시키려는 시도”이다. 제도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안전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안주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 하우어즈에게서 이 제도화의 주요한 형태는 ‘덕목’이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구분할 수 있는 차이점으로서, 다른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전쟁으로 상한 이 세상을 살면서 평화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덕목을 갖춘 사람들을 길러내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하였다.

평화적으로 산다는 것이 갈등이 생길만한 상황을 피하는 것은 아니기에, 하우어즈는 미하일 이냐티에프Michael Ignatieff의 개념을 빌어, 평화의 동의어로서 ‘권리’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냐티에프에 의하면, 이 권리라는 단어는 교육받은 사람들, 중산층 또는 상류층의 사람들, 교사나 학생들에게 친근하며,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은 권리라는 단어보다는 ‘신뢰’, ‘관용’, ‘용서’, ‘화해’, ‘회복력’ 등과 같은 일상적인 덕목을 통해 권리와 평화에 접근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일상적인 덕목은, 매일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힘이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의 제도화로서의 일상적인 덕목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세계적인 윤리”가 아니다. 그것은 상상할 수도 없을뿐 아니라 현실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간접적인 접근은 사안으로서 너무나 약해보이는 방식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앞에 놓여 있는 상황은 이에 비해 거대한 바위와 같아 보이기에, 하우어즈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신뢰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자신과 반대되는 명제들 또는 반대되는 세력들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세워가고 싶은 그런 유혹들을 물리치고, 일상적인 덕목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형성, 재형성함으로써, 하느님의 인내하심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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